‘배터리가 부족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컴퓨터를 켜고 컴퓨터에서 사이트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더니 갑자기 팅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글씨가 나타난다.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단어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부족이라는 단어는 사람만 쓰는 단어인 줄 착각하면서 살았는데 이제 보니 컴퓨터가 전원이 부족하다고 신호를 보낸다. 깨달음은 항상 늦게 오는 법이라 후회가 따르는 것이 일상이지만 부족하지 않는 충만된 삶은 없을까.

작년에 이어 올해도 별반 다를 것 같지 않는 그날이 그날 같은 소식들만 컴퓨터 사이트는 가득 보여준다. 다행히 올해는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돼지해다. 돼지라는 단어는 풍요로운 느낌을 주어서 좋다. 부족할 것 같은 느낌이 없어서 좋다.

특히나 올해는 60년 만에 돌아온 기해년(己亥年)이다. 오행에서 '기(己)'자는 흙의 기운을 표현하며, 색으로는 노란색이라고 황금이란 단어가 추가되어 여기저기 돼지들이 황금빛을 찬란하게 내뿜고 있다. 연초부터 카톡으로 황금돼지를 주고받느라 다들 얼굴빛이 환하다. 건강해야, 사랑해야, 행복해야 라고 이름 붙은 수많은 돼지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하고 있다.

황금돼지 생각을 하면 기분 좋은 소식이라도 한 줄 전해줄 것 같다. 무엇을 해도 부족할 것 같지 않는 그래서 무엇이든 풍성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을 주어서 좋다. 품위 있는 모습으로 웃고 있는 돼지 그림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돼지는 십이지 띠 중에서 마지막 해(亥)는 돼지다.

돼지의 한자 발음이 '돈(豚)'이 돈(화폐)과 같아 재물을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돼지꿈을 꾸면 복권을 사려고 한다. 무균 돼지의 심장이나 콩팥 같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기 위해 키운다고도 한다. 이것은 사람의 장기와 돼지의 것이 아주 닮았고 크기도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돼지는 고대부터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돼지가 인간과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주는 글자가 家(집가)인데 지붕(⼧)아래 돼지(豕)를 키워야 비로소 사람 사는 집이라고 했으며, “돼지가 없으면 집이 아니다(居無家 不成家)”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에는 집집마다 돼지 한두 마리는 집에서 직접 키웠었다.

돼지우리에는 검은 돼지들이 우글우글 거렸는데 무엇을 주어도 불만이 없이 꿀꿀 거리며 잘도 자라주었다. 사람의 인기척만 나도 꿀꿀거리며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끊임없이 쉬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돼지들이 가끔은 시끄럽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농촌에서 돼지를 키우는 일은 집안 살림에 큰 도움이 되었었다.

시간이 흐르고 돼지를 키우는 집들도 없어지면서 돼지 대신 사람들은 집집마다 돼지저금통을 집안에 두고 살았던 것 같다. 빨간색 플라스틱 돼지 저금통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동전이 생길 때마다 돼지 밥을 주듯이 돼지저금통 속에 넣었던 기억들을 기성세대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돼지저금통이 가득 채워지는 그 날을 생각하면서.

세월이 흐르고 양돈장이 생기면서 대량으로 돼지를 키우게 되고 구제역이 발생하여 살아있는 돼지를 살처분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 서민들의 식탁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 또한 돼지 삼겹살이다. 돼지해를 맞이하여 돼지 생각을 하다 보니 삼천포로 빠진 것은 아닌가 싶다. 그만큼 돼지는 우리와 가까운 존재인 것만은 사실이다.

돼지띠인 사람들은 희생정신과 자비심이 많다고 한다. 또한 어려운 환경에 처해도 굴하지 않고 잘 극복해나가는 성격을 지녔다고 한다. 내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이에 돼지띠를 가진 사람이 셋이나 있다. 빨간 돼지, 하얀 돼지, 파란 돼지를 의미하는 띠들과 살고 있는데 황금 돼지해를 만났으니 올해는 복권이라도 하나 구입해서 허황된 꿈이라도 간직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얼마나 행복한 고민인가.

컴퓨터 전원을 충전하면서 우리 사회를 돌아보니 부족한 것 없이 풍요로워 보인다. 하지만 컴퓨터에 전원을 충전해야 하듯 충전해야 할 것들이 많다. 황금돼지해를 맞이하여 우리나라의 어려운 경제도 꽃피우듯 활짝 피우고 해결되지 않는 국가적 사안들도 잘 해결되길 바란다. 더불어 올 한 해는 많은 분들이 황금돼지의 꿈을 이루는 한 해가 되어 꿈과 희망이 넘치는 충만된 삶이 되시길 기도한다.

- 隨筆약력 -
․ 화순초등학교 60회
․ 2008년「현대수필」 등단
․ 2008년「열린시학」 등단
․ 저서 시집『물고기자리』,『엄마의 재봉틀』
․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 현 전남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 전담강사
․ 현대수필문인회원
․ 한국작가회원
․ 동천문학상, 열린시학상 수상


화순일보 mire537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