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하면 강진을, 분청은 보성과 고흥을 상징한다. 하지만 화순 백자는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아는 이가 드물어 안타까운 실정이다. 하지만 화순 백자를 널리 알려 지역의 관광 브랜드화하고 역사 관광으로 활성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여성 도예가가 있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무량광도예 박명숙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박 작가는 현재 이양면 쌍봉사 인근에서 장작 가마를 이용해 화순백자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몇 년 전부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또 현대 생활도자기를 접목한 작품 제작에도 열정을 쏟고 있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도자기와의 첫 인연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화순 깊은 산중으로 내려가 산중에 장작가마를 짓고 도예 작업에 정진하고 있는 박명숙 도예가와 도자기와의 첫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박명숙 작가는 국영기업체에 근무를 했었는데 명예퇴직을 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 꿈이 화가였기에, 퇴직 후에는 늘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때마침 남편이 “도자기를 한번 배워보면 어떻겠냐?”며 지헌 김기철 선생님을 소개해 주었다. 박명숙 작가는 훗날 스승이 된 김기철 선생의 백자 도자기를 본 순간 한 눈에 반해 그 길로 도예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화순백자의 역사를 발견하다
몇 년 전, 박명숙 작가가 살고 있는 집 부근 쌍봉사 밑의 계곡에서 백자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전반에 걸쳐 운영되었던 백자 도자기 가마터였다. 문화재 전문위원들이 조사를 진행 했는데 남한지방의 백자 도자기 민요(民窯)들 중에 하나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쌍봉사에서 문화재 전문위원들이 조사결과를 놓고 회의를 할 때 함께 참석해서 들었던 이야기이다. 당시 그 사실이 정말로 놀라왔다. 화순에 백자의 역사가 존재했다니, 그것도 자신이 작업하고 있는 지척에서 화순 백자 가마터가 발견되다보니, 백자 도자기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쌍봉사 옆으로 낙향한 것이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화순백자의 우수성
강진은 청자, 보성과 고흥은 분청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특이하게도 같은 전라도권이지만, 화순은 백자를 생산했다. 말하자면, 화순의 도자기 역사의 정체성은 백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화순 사람들은 화순 백자의 역사조차도 알고 있지 못해 안타깝다.

백자는 분청이나 청자보다 고온을 견딜 수 있는 특징이 있다. 또 높은 온도에서 구워졌기 때문에 그만큼 견고하고 아름답다. 백자가 화순에서 생산되었다는 것은 백자토(흙)가 있었고, 연료(나무)와 유약의 재료인 규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쌍봉마을 뒤에는 규석광산이 있고 계당산 자락에 백토가 있었다.

화순 백자의 우수성을 하나만 예로 든다면 이곳에서 발굴된 작품 중 찻잔이 있었는데 그 수준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차를 마실 때 찻잔이 입술에 맨 먼저 닿는 부분을 입술, 즉 전이라고 부르는데, 출토된 화순백자는 전이 살짝 밖으로 휘어져 매끄럽게 마무리 된 특징을 보였다.

그러니까 거칠고 투박한 면을 매끄럽게 다듬어 보기에도 아름답고 차를 마실 때 입에 달라붙는 느낌까지 주어 차를 음미할 수 있는 찻잔으로서는 가장 실용적인 그릇이었던 셈이다. 그 당시 벌써 이런 기법이 사용되다니, 화순 백자의 우수성을 절로 깨우칠 수밖에 없었다.

◇작품은 작가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결과물
물론 화순 백자를 그대로 전승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박명숙 작가는 특히 백자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데 관심이 크다. 작품은 작가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고 전달하는 것이다. 박작가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작품을 통해서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박작가는 장작가마만 사용해 도자기를 굽는다. 사용이 편리한 일반 가마에 비해 장작가마는 소나무를 쪼개서 2년 이상 건조한 육송만을 연료로 사용하고, 무박 2일 동안 5-6명의 장정들이 쉬지 않고 가마의 불을 때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또 박작가의 가마는 산소 없이 불을 때는 ‘환원소성’을 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산소 없이 온도를 올려야 하기 때문에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작업인 것이다. 이 어려운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장작 가마 작품을 박작가는 소나무의 혼이 담긴 작품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매년 1회에서 2회 정도 장작가마를 이용하고 있다.

무량광도예 장작가마.

박명숙 작가의 모든 작품은 독특한 기법을 적용하고 있는데 전(입술)이 2겹이다. 안의 속마음과 밖의 보여지는 모습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장자>의 ‘제물론’에 나오는 진실로 천연 또는 때 묻지 않은 속마음과 세상과 타협하고 풍파를 이겨내는 겉모습을 나누어 작품에 녹인 것이다. 또 하나는 김기철 스승 문하에서 익힌 기법인데, 전통백자를 계승하되 현대적으로 변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박명숙 작가의 작품은 밖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안에만 백자유약을 바르는데 바깥의 흙색(자연색)과 안의 백자빛깔을 대비시키는 것이다.

또 이 기법은 3년 전 오스트리아 초대전에서 현지인들에게 많은 감동적 반응을 받기도 했었다. 비엔나의 한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했는데, 오스트리아 여성도예가와 2인전을 진행 했다. 그곳 사람들은 작품을 감상하는데 몇 분만에 끝나는 게 아니라, 작품하나를 하루 종일 감상 한다. 오전에 와서 한 두시간 보고, 오후에 또 와서 두어 시간, 결국 문 닫을 때까지 보는 것이다.

작품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으면 묻고, 너무 진지하게 감상을 해서 작가 자신조차 감동을 했다고 한다. 박명숙 작가는 오스트리아에서 화순의 풍광과 전통사찰을 알리고자 도록 작품 배경으로 화순적벽, 운주사, 쌍봉사, 만연사 등에서 촬영을 했다. 도록제목은 ‘한국의 미(美)’로 정했으며, 도록을 보고 화순으로 꼭 여행을 하고 싶다는 오스트리아 사람들도 있었으니 보람이 많았던 작업이었다.

박작가의 작품 형태는 주로 연꽃인데 여기엔 작가의 작품세계가 깃들어 있다. 연꽃은 진흙 속에 피는 꽃이다. 진흙 속에서도 더럽다고 불평하지 않고, 혹독한 겨울추위에 얼어 죽었나 내심 걱정하는데, 봄이 되면 어김없이 녹색 잎을 보여주며 희망을 주고, 한여름이면 또 우아한 하얀 꽃을 피워낸다. 박작가는 연꽃이 곧 우리 삶에 용기를 주는 꽃이라고 생각한다. 진흙 속에서 자라나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그 모습도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우리 인생의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박작가에게는 주로 작품의 영감을 받는 곳이 자연이자, 모든 일상이 작품의 모티브다. 주변의 식물이나 동물 심지어 무생물도 박작가에게는 모두 소중한 작품의 소재꺼리이기 때문이다.

◇‘무량광도예’ 후학양성
현재 ‘무량광도예’를 운영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특히 화순농업기술센터에서 수강생을 모집하고 화순군민들에게 도자기 교육을 직접 진행하고 있다. 화순의 여성들이 행복해야 화순군민이 모두 행복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도자기교육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내주는 오승탁 소장, 김동익 과장, 박효진 계장 등 고마운 분들이 많기에 지역 도자기 교육에 더욱 애착을 쏟을 수 있었다.

박명숙 작가는 두 가지 목표를 정해 놓고 도자기 수업을 하고 있다. 하나는 전문가로 양성하여 가정경제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것이다. 벌써 한사람은 도자기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은 이서면 무등산 초입에 도자기카페 건물을 짓고 있는 중이다. 매년 화순 들국화 축제에 참여해 도자기 전시 및 판매를 하고 있는데, 매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래서 회원들이 더욱더 도자기 작업에 대한 흥미를 갖는 것 같다. 말하자면 동기부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자기 힐링’은 기본이고 전인교육 차원에서 하고 있다. 단순히 도자기 작업만 하지 않고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정한 <장자>의 한 대목을 읽고 토론을 한다. 독서토론을 하다보면 ‘깨어있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다함께 합창을 한다. 닫힌 마음을 열게 하는 데는 노래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런 뒤 도자기 작업을 시작하고 작업 중에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을 한다.

◇화순백자의 맥을 잇다
앞으로 화순백자에 대한 연구와 계승이 절실하다. 박명숙작가가 화순백자 조명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화순백자 계승에 대해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작가는 수강생들에게 화순 백자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이곳에서 발굴된 백자 찻잔과 백자 사발과 같은 형태의 작업을 진행하도록 권유한다.

화순백자를 계승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이 하나하나 쌓여갈 때 화순 백자의 맥을 올곧이 이어갈 수 있으리라믿기에 더욱 그렇다. 박명숙 작가는 필연적으로 백자의 고장 화순에서 도자기 작업을 하게 되어 늘 감사하며 행복하다고 말한다.

김기철 스승의 문하에서 익혔던 작업 역시 백자였기 때문에 박작가는 화순백자에 대해 더욱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다. 또 화순군민들이 화순백자의 우수성의 자긍심을 가지고, 따뜻한 관심과 애정으로 화순 백자의 맥을 계승해나가는 도자기 장인들을 지켜봐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하여 앞으로 화순백자가 강진, 보성, 고흥을 잇는 전라도 도자기 로드로 거듭나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오늘도 그가 화순 백자의 맥을 오롯이 이어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적벽과 도예작품-사진 = 백종하 作

정소윤 기자 mire5375@hanmail.net        정소윤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